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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계 위기 디브리핑은 개척 상황…전문가 양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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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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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위기관리재단, '제2차 위기 디브리핑 세미나' 열려

어진옥 선교사가 건강한 소통과 돌봄을 위한 위기 디브리핑 세미나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싫어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디브리핑(Debriefing)은 그것을 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약화시키는 겁니다. 미리 김을 빼주는 역할과 같아요. 그리고 디브리핑을 통해 경험한 사건을 객관화하고, 잘 정리하여 장기기억창고에 넣으면 나중에 간증거리가 되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지희 기독일보·선교신문 기자] 14일 서울 가산동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회관 3층 회의실.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제2차 위기 디브리핑 세미나' 기초과정을 듣기 위해 교회와 선교단체 지도자, 멤버케어 담당자, 멤버케어 사역 관심자 20여 명이 모였다. 이날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세미나 첫날 디브리핑 사역의 기본 강의를 듣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한국 선교계에서 말하는 '디브리핑'이란, 대부분 선교사의 사역 디브리핑 개인 디브리핑을 의미했다. 그마저도 사역 디브리핑과 개인 디브리핑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지 않고, 전문 디브리퍼의 부족으로 상담이 되어버리거나 틀과 구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디브리핑 종류에는 일에 대한 나눔과 점검을 통해 객관적 시각과 격려를 얻는 사역 디브리핑(Operational Debriefing), 문화, 언어, 영적 이슈와 가정의 일상을 나누는 개인 디브리핑(Personal Debriefing), 위기를 경험한 사람이 신속하게 회복하도록 돕고 후유증(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위기 디브리핑(CISD, 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이 있다. KCMS CISD팀이자 GBT 소속인 어진옥 선교사는 "그동안 한국 선교계에 위기 디브리핑이라는 용어는 있었지만, 위기 디브리핑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고 실시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며 "한국 내에서 CISD는 정말 개척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 선교사는 미국 달라스 SIL 국제상담센터 카운셀러, 태국 치앙마이 CCF 상담센터 카운셀러로 활동한 바 있다.
김진대 KCMS 사무총장도 "위기 디브리핑은 위기와 재난을 당한 직접 피해자와 간접 관련자, 위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구조대원, 소방관, 경찰, 응급실 의사, 간호사, 군인 등에게 무엇보다 우선하여로 제공되어야 하는 돌봄"이라며 "한국교계에서도 위기를 경험한 사역자, 성도 등을 위한 케어시스템을 구축해 안정적인 위기 디브리핑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KCMS는 가장 먼저 교계 내 위기 디브리핑 전문요원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작년에 이어 위기 디브리핑 세미나를 준비했다. 기초과정 수료자는 심화과정과 전문가 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전 과정을 마치면 자격증을 수여한다.
■ 디브리핑 사역의 기본 원리와 성경적 기초
고난 이후 축복을 경험한 성경의 대표적 인물은 욥이다. 어진옥 선교사는 욥의 이야기에서 얻는 디브리핑 사역에 관한 지혜가 있다며 "욥의 반응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극심한 피해의식과 자기중심적 생각, 고집, 판단력 상실, 감정의 마비 또는 감정의 홍수, 의심, 불신, 회의, 무기력, 절망을 경험하고 작은 일에도 민감하고 상처받는 특징을 보인다.
그렇다면 고난 중에 있는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어진옥 선교사는 "말을 아주 조심해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만 해도 된다. 끝까지 같은 편이 되어주고 같이 울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욥의 친구만큼 하기도 쉽지 않고, 욥기 42장 9절을 보면 그들도 매우 훌륭한 자들이었다"며 "그런데 딱 한 가지 잘못한 것은 자신들의 '거룩병' 때문에 욥을 판단하고 끝까지 잠잠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어 선교사는 말했다.
어 선교사는 이날 훌륭한 디브리핑을 하려면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통과 갈등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어 선교사는 ▲고통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거나 비난할 때에 하나님을 방어하지 않을 수 있는가? ▲고통을 받는 사람이 아픔과 의심을 표현하고 경험하도록 할 수 있는가? 당신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질문하도록 할 수 있는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어둡고 험난한 과정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에 진심으로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곤경에 처한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 디브리핑이 필요한 이유
어진옥 선교사는 "감정적 외상이나 상처는 어느 문화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문화에 따라 정도가 다르고 개인과 사회적 반응도 다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문화마다 외상을 주는 상황에 대한 관심과 지원 방법은 있지만, 개인이나 그룹이 경험하는 외상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수재민,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을 경험한 생존자들과 가족, 구조자들이 PTSD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위기 디브리핑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또 체면문화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개발도상국, 내전 등 정치적 이슈가 쟁점이 되는 나라들은 사람들의 감정적 외상에 신경 쓸 여력이나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정적 외상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면 PTSD를 경험할 수 있다. 어 선교사는 "누구나 PTSD를 경험할 수 있으나, 한 달이 지나면 거의 없어진다"며 "한 달이 지나도 극심한 고통이 계속되면 위기 디브리핑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명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24~72시간 이내에 위기 디브리핑을 시행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늦더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어 선교사는 "디브리핑에서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와 외상"이라며 "외상은 스트레스와 직결되고, 사람에게 계속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디브리핑 안전 모델이 제공되면 외상의 경험에서 빠르고 완전하게 회복되도록 도우며, 이를 통해 보다 건강하게 사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단체와 기관이 평소 디브리핑 요원을 훈련시키면, 유사시 전문가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쓸 수 없을 때 훈련받은 동료가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어 선교사는 "개인 디브리핑을 할 때는 보통 한 세션에 2시간씩 3세션이면 적당하며, 아무리 길어도 5세션이 넘으면 상담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위기 디브리핑은 개인의 경우 한 세션 2시간의 제한된 시간 안에 모두 끝나야 하고, 그룹의 경우 3~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위기 디브리핑을 할 때는 주어진 시간 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장기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고, 한가지 사건을 기능 회복, 예방방지에 초점을 두어 다룬다. 어 선교사는 "이는 전문 상담이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성장이나 개선, 문제 해결이나 문제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경우 상담은 보통 한 번에 1시간씩 최소 12회(약 3개월) 이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그는 KCMS가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주민을 상대로 진행한 위기 디브리핑 사역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어진옥 선교사는 "당시 목재공장이 바로 옆에 있는 허허벌판에서 그룹 디브리핑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디브리핑 후 주민들이 찾아와 '많은 사람이 와서 물자 지원을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웠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당신들이 처음이다. 우리가 특별하고 가치 있게 느껴졌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처럼 디브리핑을 통해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며, 이는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 선교사는 한국인들 안에 디브리핑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디브리핑 받기를 거부하거나, 전문가를 파견해도 오히려 손님으로 인식해 힘들어하는 상황도 있다며 "디브리핑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고, 훈련된 디브리핑 전문가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어진옥 선교사가 적극적 경청, 스트레스와 외상, 위기와 PTSD, 전인적 건강과 정신병리, 위기 디브리핑 안전모델, 디브리퍼 디브리핑 등에 대해 강의하고 김진대 목사가 위기관리의 원리와 구조 이해, 하나님의 인생 위기 디브리핑 등을 맡아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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