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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칼럼] 가정을 통해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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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7 20:49


가정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현대사회가 개인화 되고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기본인 결혼의 의미가 "언약"보다는 "감정"으로 치우쳐 영원을 보장할 수 없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위태한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조건이라는 안정장치가 아니고서는 차마 결혼을 선택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실제로는 결혼이 "사랑"보다는 "조건"을 따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만 가지고 선택하기를 원하지만 결국은 안전성 때문에 "조건"을 따르게 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가지고 결혼이라는 것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인식 속에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은 마치 불장난처럼 한 번 타오르고 꺼져버리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차마 "사랑"만 가지고 결혼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서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랑"만 가지고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사랑"이라는 말은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4:8)"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하나님께 배우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결혼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가장 큰 교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사랑이 주는 이미지는 일단 매우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 같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지만 한국은 드라마 천국이라 보통 여성들이라면 드라마를 통해 느끼는 이미지가 사랑일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디어를 끄고 성경을 통해 사랑의 이미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첫 제목에 "인내"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제가 성경을 통해 배운 사랑은 바로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의 글에 소개된 사랑의 속성을 보면 처음도 "인내"이고 나중도 "인내"라는 것을 소개합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정의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교회는 가정사역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셨고 그 가정을 통해 우리가 천국의 삶을 훈련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삶을 훈련 받는다 할 때에 야고보 사도도 인내를 매우 강조합니다.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는데 연단은 인내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인내"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적으로 인내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인내는 바로 "긍정적인 성품"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할 때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시험 성적을 받았을 때 오는 기쁨에 대한 상상"에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왜냐면 구원받은 자의 미래가 밝은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먼저는 인내를 이루기전 구원 받은 자 안에 있는 기쁨이 충만할 때 인내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신가요? 만약 부정적인 그림이라면 그 부정적인 생각들을 잘 내려 놓기를 주님께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기쁨,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하박국 선지자의 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신앙의 위기는 그 초점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람에게만 맞춰질 때 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바라볼 때가 많고 상황을 바라볼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주를 바라보기보다는 이 땅의 것을 바라보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눈물로 주의 긍휼을 바라며 회개하는 심령이 되게 하십니다.


시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의 긍정의 이유는 오직 주님이 계시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이며 인내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바울의 사랑의 기술을 보십시오.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러분은 모든 것을 참고 계신지요. 매일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은 싸움의 연속이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바라보며 아내를 바라보며 또 자식을 바라보며 참고 또 참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말할 수 없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근거는 우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바라보는 것에서 나옵니다.


한국에는 참 많은 크리스천 가정들이 있습니다. 전도도 보면 결국은 "참는 것"에서 모든 승패가 결정됩니다.


사람을 찾는 것에서부터 한 사람이 변화되기까지 믿어주는 목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인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사랑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이런 인내의 과정에서 반드시 승리하십시오. 그렇게 한국 교회의 부흥 또한 함께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소망이 넘쳐나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날마다 샘솟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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